12월엔 매년 그렇듯 다가오는 새해에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보자는 파이팅이 넘칩니다. 그래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많아졌습니다. 무엇인가 떠오를 것 같으면서도 뭔지 모르는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책'이었습니다.
저는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책을 사러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새 책 냄새를 좋아했고, 전자책과 종이책 가릴 것 없이 책이란 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 지금의 신랑과 연애할 때만 해도 한 달에 한 번은 서점을 꼭 갔었고, 할 일 없이 이 책 저책 구경하기도 했었습니다. 서점가기 싫어하던 신랑을 데리고 가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책에게 다가가는 사람이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개인 시간이 줄어들면서 나에게 책이라는 건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동화책이 전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은 일이고,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지는 것을 모든 부모는 바랄 것이고 저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들에게 한번 읽어주기 시작하면 소리 내어 열댓 권을 읽어야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원하는 조용하고 차분한 환경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 무의식 중에 스트레스를 굉장히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어리고 말이 거의 통하지 않을 땐 혼자만의 독서시간에 책을 읽는다는 걸 정말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제 곧 5살 7살이 되다 보니 엄마가 무엇을 하더라도 조금 기다려주고 이해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같이 책을 읽자. 너희는 너희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엄마는 엄마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게." 하는 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동안 책을 잊고 살았었던 핑계입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럴듯한 핑계인 것 같습니다. 사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엄마, 아빠라면 공감할만한 핑계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핑계들은 지나간 과거이니 묻어두자고 생각하고 새해의 목표로 '책을 꾸준히 읽자!'라고 정했습니다. 하루에 10분, 15분이라도 좋으니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언제일까 생각해 보니, 새벽시간 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엄마인 저는, 일찍 일어나는 시간을 활용해서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났을 때 무조건 어떠한 방법이든 찾아서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또다시 핑계로 되돌아갈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다음날 새벽에 일어날 수 있도록 아이들과 잠자리에 들면서 휴대폰을 본다거나 게임기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던가 하는 행동들은 하지 않고 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수면을 한 뒤 새벽에 눈이 저절로 번쩍 뜨였답니다. 새벽시간에는 매우 조용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는 반면에, 일어나서 움직이게 되면 아이들이 아주 곤히 잘 자다가도 곁에 엄마가 없다는 불안감에 자다가도 깨서 자꾸 엄마를 찾게 되는 소소한 단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워서도 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읽는 것이 베스트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밝은 불빛에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봐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합니다.
전자책이라는 것을 선택하기까지 저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장르의 책이든 가리는 것 없이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했었습니다. 책마다 다른 종이의 질감을 손으로 느끼며 한 장 한 장 넘겨서 읽는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책의 냄새도 좋아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서점에 자주 가지 못하고, 서점 안에서 책을 여유 있게 고르고 읽어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몇 권 구입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고 고르는 게 아니다 보니 책 고르기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혼자 있을 땐 몰랐었던 읽고 싶은 책을 계속 사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감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책을 온라인으로도 빌릴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검색을 하며 국민도서관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복 택배비를 지불하고 다양한 책을 빌려서 읽어보았습니다. 기본 회원가입만 해서 빌리게 되면 최신간을 빌릴 수 없기 때문에 연회비를 납부하고 최신간을 빌려 읽어볼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었습니다. 국민도서관의 시스템은 회원들이 자신이 개인적으로 구매하고 가지고 있는 책을 국민도서관에 맡겨놓고, 그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여하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다른 누가 먼저 그 책을 대여해서 읽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반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대여기간도 두 달 정도에 연장까지 할 수 있어서 책을 읽는 기간은 넉넉했지만 그만큼 빌려간 책이 반납될 때까지의 기간도 길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종이책을 읽을 방법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그 사이에 알라딘에서 두 권정도 전자책으로 구매를 했습니다. 종이책은 아이들이 엄마가 읽는 책이 어떤 건지 궁금해서 보려다 찢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전자책으로 구매를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나는 전자책을 구매해서 읽으면서도 왜 계속 종이책을 고집하고 있는가?'였습니다. 보관이 쉽고, 읽기도 편하고(탭과 휴대폰, 컴퓨터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가방에 넣어 다니기에 무겁지도 않는다는 장점이 있는데 왜 종이책만 보려고 고집했는가였습니다. 애초에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종이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것에 중점을 맞추기 시작했더니 나는 어떠한 형태의 책이든 그냥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고 나니 책을 읽을 방법 찾기가 수월해졌습니다. 매달 일정 비용을 내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어플을 알게 되었고, 책 한 권 살 가격으로 내가 원하는 책을 한 달 내내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거기다 최신간도 포함되어 있어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책과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 좋아요!
책을 틈틈이 읽을 수 있게 된 것, 한 권 전체를 완독 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 삶은 독서로 인해 풍요로워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답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 다른 사람이 펼쳐놓은 상상 속의 세계를 경험하는 건 독서가 아니면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을 틈틈이 읽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아이들도 이제는 엄마가 책을 읽을 때에는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으면 바뀌지 않았을 제 삶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도 받고 자신감도 얻으면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육아로 조금은 지치고 우울했던 날에도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삶의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이제는 일을 하다가 막히는 것이 있을 때도, 아이들과 무얼 하면서 놀아줘야 할지 고민될 때도, 인터넷 검색이 아닌 서적 검색을 하게 된다는 점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책에서 모든 답을 찾을 순 없겠지만, 저와 같은 문제로 저보다 먼저 고민했던 사람들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책이 모든 것을 다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경험을 책에서 배우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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